환통 사상의 근원은 청초 시기 서학이 중국에 처음 전파된 시기에까지 뿌리를 두고 있다. 1890년 리훙장이 『만국약방』의 서문을 쓰며 “만일 학자들이 중서의 이론을 통합하여 그 통합점을 찾아내어 최고로 정밀하고 미묘한 경지에 도달한다면, 이는 의학에 있어 소소한 보탬이 아닐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서의 이론을 통합하여 그 통합점을 찾는다”는 주장을 제시하였다. 서양의학이 중국에 널리 퍼지면서 한의계에서는 일제히 주목하게 되었다. 일부 한의계 인사들은 점차 중서의학 통합 사상을 갖게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학파를 형성하였고,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 인물로는 당종해, 주백문, 운철교, 장석순 등이 있다. 1. 당종해의 ‘절충귀일’ 당종해는 19세기 후반 활동한 인물로, 당시 국난이 깊고 내외적 갈등이 심화되며 유럽 문명이 동아시아로 확산되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는 흐름에 순응하자는 입장을 취하며, 중국의 한의계에서 처음으로 “중서의학 통합”이라는 구호를 제창한 인물이다. 그는 “서양의학도 장점이 있지만, 한의학도 단점이 있다……경계와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오직 절충하여 하나의 진실을 추구한다.”(당종해: 『중서합통의경정의』, 청광서 20년(1894) 상강유해산방 석인본⑵)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1) ‘절충귀일’을 통해 완벽한 의학을 수립하는 것, (2) 중서의학 원리는 서로 통하는 것이며, (3) 중의를 중시하고 서의를 경시하며, 과거를 중시하고 현대를 경시한다는 것이다. 초기 중서의학 통합의 대표자로서, 초보적인 기여는 분명히 무시할 수 없다. 『청조속문헌통고』에는 “근대의 의가들 중,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자는 서의에 치우치고, 고전을 고수하는 자는 중의에 치우친다. 둘 다 중서의 책을 융합하여 통합하지 못하고, 적절한 절충을 이루지 못한다. 당씨는 이를 우려하여 정신을 다향하여 다섯 권의 책을 저술하였으며, 막을 잡고 막을 따르듯, 벤치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당종해에 대한 평가이다. 2. 주백문의 ‘화양의학 각기 유익’ 주백문(19세기 중반 생), 자는 소련. 『화양장상약찬』(1892)을 저술하였으며, 또 다른 이름으로 『중서장부도상합찬』이라고도 한다. 그는 서양의학의 해부학 지식을 배우는 것을 강조하여, 한의학이 인간 신체 구조에 대해 세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을 보완하고자 하였다. 그는 중서의학 통합에 대해 비교적 신중한 태도를 취하며, “통할 수 있는 것은 통합하고, 차이 나는 것은 그대로 둔다”, “강제로 통합하려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3. 장석순의 ‘중심참서’ 장석순은 전인들의 견해를 충분히 흡수한 후, 중서의 경계를 마음속에 두지 않고, 중국 전통의학의 근간을 굳건히 하면서 “서양의 장점을 취하여 우리에게 부족한 점을 보완한다”(장석순: 『중서합통의학록』, 베이징: 인민보건출판사, 1974, 18. 장석순: 『의학애중참서록』, 인민보건출판사, 1974: 18⑶)는 입장을 취하여, ‘중심참서’라는 통합 원칙을 확립하였다. 장석순은 임상치료 특히 약물치료를 중심으로 중서의학을 연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중서의학 통합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였다. 4. 운철교의 ‘신중의’ 운철교는 깊은 전통학력과 광범위한 중서문화 접촉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영어 또한 능숙하게 다루어, 중서의학을 비교 연구하고 통합 탐색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독특한 견해를 제시하였다. 『상한론연구·총론』에서 그는 “현재 시대에 의학 개혁을 논할 때, 서양의학과 교류하지 않는다면 다른 길은 없다.”라고 강조하였으며, “중의가 진보적 가치를 가지려면 반드시 서양의학의 장점을 흡수하여 융합하여 새로운 중의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중서의학의 차이는 중서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라며, “이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방법론을 가진 두 학설이다.”(운철교: 『약안의학서집』 제2집 하권 『상한론연구』, 10쪽, 81쪽)라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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